
군비통제 백서에서 사라진 ‘한반도 비핵화’
2025년 11월 27일, 중국은 새로 발간한 “신시대 중국의 군비통제, 군축 및 비확산” 백서를 공개했다. 이 문서는 국제사회에 중국의 핵 정책 방향과 군축 의지를 천명하는 중대한 외교 문서였다. 그런데 이번 백서에서 이전까지 거의 고정적으로 들어갔던 “한반도 비핵화 지지” 문구가 완전히 삭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과거 중국은 2005년 군축 백서에서부터, 그리고 이후 여러 안보 백서에서도 반복적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명시해 왔지만, 이번에는 그 표현이 빠졌다. 이 사실은 단순한 문구 수정 이상으로 해석되는 중이다.

대신 이번 백서에는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 공정한 입장과 올바른 방향을 견지하며, 한반도의 평화·안정·번영을 위해 노력해 왔고, 한반도 문제는 정치적 해결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다소 모호한 표현만 담겼다. 과거처럼 ‘비핵화’라는 구체적 목표는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았다.

사실상 북핵 ‘암묵적 인정’…전문가 분석
이 문구 삭제가 갖는 의미는 단순한 외교 문서 개편이 아니라, 정책 기조 변화의 신호라는 평가가 많다. 한 국제평화 연구원은 “중국이 더 이상 ‘한반도 비핵화’라는 말을 꺼낼 수 없다면, 이는 사실상 핵무장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을 용인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해석에는 최근 북·중 관계 변화가 배경으로 거론된다. 특히 지난 9월 북중 우호 행사 및 정상 회담 이후 양국 간 정치·군사적 협력이 강화된 정황이 알려졌고, 이후 중국의 한반도 관련 공식 문서에서 비핵화 문구가 빠지는 흐름이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 속 중국의 현실 선택
이번 정책 변화는 단순히 북핵 문제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중국의 전략적 계산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많다. 최근 미중 사이 지정학 경쟁이 격화되면서, 중국은 북한을 지역 내 ‘지렛대’ 혹은 전략적 자산으로 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즉, 북한을 억제 대상이 아니라 협력 동반 혹은 완충지대로 보면서 북핵 문제를 더이상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오히려 중국 이익에 반한다고 본 것이다.
또한, 현재 한반도와 주변 정세에서 핵 추진 잠수함, 미사일 방어망 강화, 군사력 증강 등이 현실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비핵화’라는 이상론보다 ‘핵과 군사력을 통한 현실 균형 유지’ 쪽으로 방향이 재설정되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국과 동아시아 안보에 주는 충격
중국의 이러한 입장 변화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 안보질서에 상당한 파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 핵 위협을 억제하고 지역 안정을 유지하는 국제적 합의의 축이었다. 그런데 중국이 이를 공식 문서에서 제거했다는 것은, 북핵을 둘러싼 협상 구조와 억제 체계 자체가 무력화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한국과 미국, 일본 등 동맹국에게는 안보 부담 증가를 뜻한다. 북한이 핵 보유국으로 사실상 인정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억지 전략 재편, 방어 체계 강화, 핵 억제력 유지 방안 재검토 등 한국 안보 정책 전반이 재설계돼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

새로운 동북아 질서의 전조인가?
이번 백서 개정은 단순한 외교 문장의 변화가 아니라, 동북아 전략 구도 자체를 재편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중국은 북핵 문제를 더 이상 낡은 제도로 억제하려 하기보다, 힘의 균형을 통한 현실 관리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한반도의 비핵화는 과거처럼 국제사회의 공동 목표라기보다는, 각국 이해관계에 따라 유동적으로 다뤄지는 ‘협상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을 포함한 관련국들은 이 흐름을 주시하면서, 새로운 대응 전략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